[전문가 칼럼] 비싼 데 싼 아이폰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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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가시고 새벽녘의 공기가 조금 선선함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할 무렵의 9월은 아이폰 이용자들의 식었던 마음을 뜨겁게 달구는 시기다. 의지와 상관없이 무겁게 내려 앉는 눈꺼풀과 씨름해야 하는 9월의 어느 새벽, 태평양 너머에서 펼쳐지는 애플의 아이폰 이벤트를 2시간에 걸쳐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이들에게 뜨거운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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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새로운 아이폰에 대한 기대로 두근두근 대는 마음을 진정할 틈도 없이 발표가 끝나기 무섭게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더욱 뜨거운 토론이 펼쳐진다. ‘혁신’이라는 키워드를 뚫고 막기 위해 온갖 논리로 무장한 창으로 찌르고 방패로 막는 격렬한 전장으로 바뀌는 것이다. 물론 이 격렬한 전투는 언제나 어느 쪽을 승자로 만들지 못한 채 조용히 휴전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해마다 새 아이폰의 등장을 이렇게 기념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볼거리가 되어 왔다.

이처럼 ‘혁신’은 새 아이폰을 두고 격론을 벌이게 만드는 스위치였지만, 혁신에 버금가는 논란의 키워드가 또 하나 존재했다. 새 아이폰을 발표할 때마다 항상 주목할 수밖에 없는 거의 마지막 슬라이드에 있는, 1차 출시국에 앞서 보게 되는 새 아이폰의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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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아이폰 이벤트의 끝 무렵에 새 아이폰의 가격이 뜨면 대부분은 재빨리 환율을 살피고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빴다. 미국 이동통신사에서 지불하는 보조금을 얹어서 가격을 표시했던 아이폰 6까지 출고가를 미리 알 수 없던 때에는 거의 하지 않던 일이지만, 마지막으로 이통사 보조금을 포함한 가격과 처음으로 24개월 할부 금액을 함께 표시했던 아이폰 6S, 6S 플러스 이후로 모든 풍경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보조금을 걷어내고 제대로 된 가격표를 붙였을 때 쉽게 적응하기는 어려웠다.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의 아이폰은 당장 주머니를 열기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던 것이다. 더구나 해를 거듭하며 새로운 프로세서, 늘어난 저장공간, 강력해진 카메라, 똑똑해지는 인공 지능을 앞세워 슬금슬금 오르는 새 아이폰의 가격을 볼 때마다 소셜 미디어와 커뮤니티는 “비싸네”와 “안 살래”의 게시물들로 앙상블을 연주했다.

그만큼 우리는 더욱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뜻하면서도, 민낯을 드러낸 아이폰 가격이 우리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 지 직접 계산할 수 있게 된 점에서 어쩌면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미국에 판매되는 아이폰은 각 주마다 다른 부가세 방침으로 세금을 제외한 가격으로 표시되므로 우리는 늘 애플식 기준 환율에 우리의 부가세를 곱해 예상가격을 뽑았고, 그 가격은 우리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예방주사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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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Xs Max 512GB는 기어이 200만원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예방 주사를 맞아도 어느새 100만 원을 넘긴 아이폰은 적응하기 쉽지 않지만, 애플은 충격을 줄이기 위한 몇 가지 장치를 함께 제시한다. 새로운 아이폰은 언제나 비싸지만, 그보다 싼 아이폰도 있다는 것을 항상 보여주고 있는 것도 완화책 가운데 하나다. 가격 상한선을 경신하는 신형 아이폰과 달리 애플은 이전 세대의 가격을 재조정하며 상대적으로 가격 범위를 넓힌 선택지를 제시해 온 것이다.

이런 흐름은 아이폰 XS와 XR을 내놓은 올해도 변함이 없다. 단지 미세하나마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이전 애플의 방침대로라면 지난 해 첫 노치 디자인으로 내놓은 5.85인치 아이폰 X의 가격을 조정했어야 하는데, 올해는 그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 아이폰 X의 자리에 동일한 화면 크기와 저장 공간을 가진 아이폰 XS를 넣었다. 그것도 같은 가격으로. 최신 프로세서와 더 뛰어난 카메라, 전에 없던 센서를 넣어 새 아이폰의 값을 조금이라도 올려 받았던 애플의 아이폰 가격 정책에서 볼 때 기존 가격의 유지는 매우 흥미로운 결정이었다.

왜 애플이 이렇게 가격을 정했는 지 이유를 단언할 수는 없어도 이유를 추정해볼 수는 있다. 단지, 올해는 지난 해 아이폰 XS보다 더 비싼 아이폰 XS 맥스 시리즈가 있다는 것과 그보다 싼 아이폰 XR을 동시에 투입하는 해라는 점을 볼 때 그 기준을 높일 수 없었을 거라 짐작할 뿐이다. 무엇보다 아이폰 XS보다 큰 6.46인치 아이폰 XS 맥스에 쏠린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없다. 항상 애플은 더 큰 화면의 아이폰에 대해 100 달러 이상 더 비싼 가격표를 붙였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이폰 XS 맥스 64GB는 아이폰 XS보다 100달러 비싸게 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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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최고 용량을 가진 아이폰 XS 맥스의 가격이다. 512GB 용량의 아이폰 XS 맥스는 무려 1천449달러에 이른다. 세금을 더하고 환율을 곱해 보니 200만 원 안팎에 이를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자 많은 이들이 술렁거릴 수밖에 없던 것. 100만원 스마트폰으로 일반화된 아이폰이 이제 200만원 시대를 앞장서 달릴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나마 최근 200만 원을 넘기진 않을 것이라는 예상 가격이 공개되기는 했지만, 이제 우리는 애플의 200만원짜리 스마트폰에 대해서도 미리 적응력을 키우라는 의미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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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저렴한 iPhone XR도 출시 예정이다>

아마도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애플은 올해 비싼 아이폰보다 값싼 아이폰의 제품군을 더 늘렸다. 아이폰 7과 아이폰 8 시리즈도 여전히 판매 목록에 놔둔 채 가격을 낮췄고, 아이폰 XS보다 가격을 낮춘 신형 아이폰 XR도 공개했다. 아이폰 XR은 100만 원대 스마트폰이라는 가격대라는 점에서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아이폰 XS보다 30만원 가까이 상대적으로 값이 싸다 보니 오히려 실속 있게 보이는 착시 현상도 일으키는 중이다.

이처럼 애플은 매우 영악한 가격 정책으로 발길을 돌리려는 이용자를 유혹한다. 너무 비싸서 살 마음을 접으려는 이용자에게 “좀더 싼 거 있으니 보고 가세요”라고 살살 구슬리는 애플의 손짓에 냉정히 뿌리치지 못한 이용자는 다시 애플 매장으로 돌아가고 만다. 구형과 신형을 가리지 않고 더 싸게 느껴지는 아이폰, ‘실속’이라는 말로 지름을 포장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는 애플의 가격 정책에 이용자는 어느 틈에 무장 해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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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iPhone Upgrade Program>

애플은 여기에 카운터 펀치를 하나 더 날린다. 이용자 부담을 최소화하는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이다.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가격을 주도해 온 주도자 중 하나였던 애플도 이용자의 반응을 어느 정도 예상한 듯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처럼 당장 목돈을 쓰지 않을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내놓았다. 아이폰을 할부로 사면서도 수리 보증까지 책임지는 이 프로그램으로 아이폰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다. 

물론 애플의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서 만날 수는 없지만, 이동통신사를 통해서 조금 변형된 형태로 실행되고 있다. ‘제로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LG유플러스의 중고폰 가격 보장 프로그램도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24개월 뒤 40%의 가격을 보장해주므로 할부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어 조금 더 유리하다고 봐야할 지도 모르겠다.

또한 아이폰의 경우, 수리 부담이 다소 큰 편이나 유플러스에서는 속도 용량 격정없는 데이터 88 요금제를 사용할 경우, 분실/파손 보험료를 30개월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프로모션도 있다. 결국 발표 때마다 비싼 아이폰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비싼 것처럼 보이지 않게 만드는 기술만큼은 확실히 터득한 애플이다. 우리는 이번에도 또 ‘비싼 데 싼’ 아이폰을 보며 애플의 포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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