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NOT? 고객 브랜드화보 시리즈] #9 북한학 박사 이현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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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not?’ 브랜드 화보 시리즈는
자신의 분야에서 도전을 이어나가는
LG U+ 고객님들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대담하고 진정성 있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브랜드 정체성을 대변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도전의 가치와 확고한 신념이 주는 메시지를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Why not? 다음 빈칸에 채워질
여러분의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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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살이 가까운 나이에 북한학 박사에 도전한 이현희님. 강사로, 상담사로, 현재는 코로나 역학조사 업무까지. 나이에 구애 받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에 공헌하고 있는 이현희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50세 이후 북한학 박사과정에 도전했다고 들었어요. 도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2008년부터 1천 시간이 넘게 중학생, 집창촌 여성, 소년원, 탈북민, 노년 어르신 등 다양한 분들을 대상으로 무료 상담 봉사를 계속해오고 있었어요. 그러다 2011년에 우연한 계기로 탈북민 여성과 상담을 진행하면서 탈북민 인권 문제와 쉽지 않은 정착 과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자유를 찾아 이곳에 왔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 문화 차이, 경제력, 인권 등 많은 어려움을 들으면서 안타깝더라고요. 도움이 되고 싶은데 능력이 허락하는 범위는 상담뿐이라 아쉬운 부분이 많았어요. 그렇게 한동안 고민하다가 ‘전문성을 갖춘다면 내가 도울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탈북민 여성들과 함께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북한학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결혼 후에는 YMCA 청소년 담당자, 지역신문 기자, 학습지 교사 등 다양한 일을 해왔는데, 나이 50살에 아예 다른 분야의 공부와 일에 도전하게 된 거죠.
새로운 학문에 입문하는 것도,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당시의 이현희님의 생각이나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일단 도전 자체가 두려웠고 고민도 많이 한 건 사실이에요. 당시 대기업 직원들을 대상으로 리더십을 강의하는 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서 수입도 나름 괜찮았거든요. 당장 가계에 보탬이 되는 활동을 포기하는게 분명 쉬운 결정은 아니었죠.
하지만 이 도전으로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더 많은 탈북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생각하니 주저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그동안 1천 시간이 넘게 상담을 진행하면서, 소통하고 정보를 알려주고 도움을 주는 일에 큰 보람을 느꼈기 때문에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또 갑자기 학자의 길을 가겠다고 하니 지금도 편하게 살 수 있는데 나이 들어서 왜 도전하냐는 주변의 반응도 있었어요. 아무래도 낯설고 돈이 되는 학문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런 반응이 나왔던 것 같아요. 다행히 저의 상담 히스토리나 탈북민을 돕고 싶어하는 마음을 아는 가족들이 강력하게 지지해준 덕분에 용기를 내어 입학 신청을 할 수 있었어요.
입학 후 겪었던 어려움이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입학 면접 심사 때 연구와 논문작성 과정 등이 쉽지 않아서, 체력적으로 가능할 지 우려를 표하셨어요. 젊은 사람도 힘들어하는 과정인데 괜찮겠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죠. 하지만 연구 주제에 대한 열정과 계기, 구체적인 계획 등 열정을 어필한 덕분에 합격했어요.
에피소드라하면 첫 강의 때 동기 대학원생이 저를 보고 교수님! 하면서 강의실을 물어보던 기억이 생생해요. 강의실에 갔더니 제 옆자리더라고요. (웃음) 자녀들보다도 어린 대학원생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이 처음엔 쉽지 않았어요. 그리고 졸업을 앞두고 논문을 준비하면서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어요. 스트레스가 대상포진으로 나타났죠. 건강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서 논문을 포기할까 고민도 많았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한 나만의 방법, 원동력이 궁금해요.
논문을 쓸 때엔 하루에 잠을 4시간 이내로 줄이면서 4년간 준비하다보니, 대상포진을 진단받기도 하고 나중에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하루에 2시간씩은 꼭 운동하면서 체력을 보강해 이겨냈어요. 할 일이 있으면 절대 미루지 않고, 밤을 새서라도 끝냈습니다.
또 어린 대학원생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도, 함께 발표를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요. 똑같은 동료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나이는 어려도 존칭을 갖춰서 대했어요. 또, 과제 발표를 앞두고는 며칠간 밤을 새면서 연구하고 더욱 치밀하게 준비했죠. 나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실력으로 증명하자’라는 마인드로 임하다보니 차츰 인정받고, 나중에는 동료들과도 훨씬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노력해서 한 번 성취감을 맛보고 나면, 다음에도 또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는 느낌이에요. 또 여성 탈북민의 삶에 더 기여하고 싶다는 욕심도 힘든 대학원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한 든든한 동력이었죠.
현재는 코로나 역학조사센터에서 사회에 공헌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영등포구 보건소에서 1년 넘게 코로나 역학조사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코로나19와의 전쟁에 저 또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기여하고 싶었어요.
국가 안보의 개념은 기존의 군사적 위협에서 마약, 전염병 등 비군사적 위험까지도 포함하고 있거든요. 저는 스스로 군복 대신 방호복을, 방독면 대신 마스크를, 총 대신 전화를 통해 역학조사관의 임무를 다하는 전사라고 생각합니다.
멋지십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제일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요?
다시 학자의 삶으로 돌아가 제 분야 연구에 매진할 계획이에요. 집필, 강연 등을 통해서 여성 탈북민의 현실을 알리는 플랫폼이자, 목표했던 바처럼 인권 신장과 사회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작은 버팀목이 되고 싶습니다.
U+멤버십 구독콕 서비스를 활용해서 밀리의 서재로 틈틈이 전공 관련 서적을 읽고 있는데요. 코로나가 끝난다면 또 열심히 노력해서 제 책을 완성해, 언젠가 밀리의 서재에서도 제 책을 만나볼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고 있어요.
비슷한 나이, 또래의 도전을 앞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내로, 엄마로 내 인생을 끝내기에 ‘나’는 너무 소중한 사람이에요.
처음 박사 학위에 도전할 때, 반대와 우려도 많았죠. 하지만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고 목표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해냈어요.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자기계발을 계속 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되돌아봤을 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요.
세계적인 디자이너 베라 왕(Vera Wang)은
자신의 결혼식을 위한 드레스를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하며, 마흔 살의 나이에
디자이너에 도전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정으로
북한학 박사에 도전하고,
현재는 코로나 역학조사 센터에서 근무하며
사회에 공헌하고 계신 이현희님처럼,
나이에 관계없이 나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여러분을 LG유플러스가 응원합니다.
[WHY NOT? 고객 브랜드화보 시리즈] #9 북한학 박사 이현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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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not?’ 브랜드 화보 시리즈는
자신의 분야에서 도전을 이어나가는
LG U+ 고객님들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대담하고 진정성 있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브랜드 정체성을 대변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도전의 가치와 확고한 신념이 주는 메시지를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Why not? 다음 빈칸에 채워질
여러분의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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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살이 가까운 나이에 북한학 박사에 도전한 이현희님. 강사로, 상담사로, 현재는 코로나 역학조사 업무까지. 나이에 구애 받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에 공헌하고 있는 이현희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50세 이후 북한학 박사과정에 도전했다고 들었어요. 도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2008년부터 1천 시간이 넘게 중학생, 집창촌 여성, 소년원, 탈북민, 노년 어르신 등 다양한 분들을 대상으로 무료 상담 봉사를 계속해오고 있었어요. 그러다 2011년에 우연한 계기로 탈북민 여성과 상담을 진행하면서 탈북민 인권 문제와 쉽지 않은 정착 과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자유를 찾아 이곳에 왔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 문화 차이, 경제력, 인권 등 많은 어려움을 들으면서 안타깝더라고요. 도움이 되고 싶은데 능력이 허락하는 범위는 상담뿐이라 아쉬운 부분이 많았어요. 그렇게 한동안 고민하다가 ‘전문성을 갖춘다면 내가 도울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탈북민 여성들과 함께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북한학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결혼 후에는 YMCA 청소년 담당자, 지역신문 기자, 학습지 교사 등 다양한 일을 해왔는데, 나이 50살에 아예 다른 분야의 공부와 일에 도전하게 된 거죠.
새로운 학문에 입문하는 것도,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당시의 이현희님의 생각이나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일단 도전 자체가 두려웠고 고민도 많이 한 건 사실이에요. 당시 대기업 직원들을 대상으로 리더십을 강의하는 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서 수입도 나름 괜찮았거든요. 당장 가계에 보탬이 되는 활동을 포기하는게 분명 쉬운 결정은 아니었죠.
하지만 이 도전으로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더 많은 탈북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생각하니 주저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그동안 1천 시간이 넘게 상담을 진행하면서, 소통하고 정보를 알려주고 도움을 주는 일에 큰 보람을 느꼈기 때문에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또 갑자기 학자의 길을 가겠다고 하니 지금도 편하게 살 수 있는데 나이 들어서 왜 도전하냐는 주변의 반응도 있었어요. 아무래도 낯설고 돈이 되는 학문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런 반응이 나왔던 것 같아요. 다행히 저의 상담 히스토리나 탈북민을 돕고 싶어하는 마음을 아는 가족들이 강력하게 지지해준 덕분에 용기를 내어 입학 신청을 할 수 있었어요.
입학 후 겪었던 어려움이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입학 면접 심사 때 연구와 논문작성 과정 등이 쉽지 않아서, 체력적으로 가능할 지 우려를 표하셨어요. 젊은 사람도 힘들어하는 과정인데 괜찮겠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죠. 하지만 연구 주제에 대한 열정과 계기, 구체적인 계획 등 열정을 어필한 덕분에 합격했어요.
에피소드라하면 첫 강의 때 동기 대학원생이 저를 보고 교수님! 하면서 강의실을 물어보던 기억이 생생해요. 강의실에 갔더니 제 옆자리더라고요. (웃음) 자녀들보다도 어린 대학원생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이 처음엔 쉽지 않았어요. 그리고 졸업을 앞두고 논문을 준비하면서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어요. 스트레스가 대상포진으로 나타났죠. 건강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서 논문을 포기할까 고민도 많았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한 나만의 방법, 원동력이 궁금해요.
논문을 쓸 때엔 하루에 잠을 4시간 이내로 줄이면서 4년간 준비하다보니, 대상포진을 진단받기도 하고 나중에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하루에 2시간씩은 꼭 운동하면서 체력을 보강해 이겨냈어요. 할 일이 있으면 절대 미루지 않고, 밤을 새서라도 끝냈습니다.
또 어린 대학원생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도, 함께 발표를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요. 똑같은 동료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나이는 어려도 존칭을 갖춰서 대했어요. 또, 과제 발표를 앞두고는 며칠간 밤을 새면서 연구하고 더욱 치밀하게 준비했죠. 나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실력으로 증명하자’라는 마인드로 임하다보니 차츰 인정받고, 나중에는 동료들과도 훨씬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노력해서 한 번 성취감을 맛보고 나면, 다음에도 또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는 느낌이에요. 또 여성 탈북민의 삶에 더 기여하고 싶다는 욕심도 힘든 대학원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한 든든한 동력이었죠.
현재는 코로나 역학조사센터에서 사회에 공헌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영등포구 보건소에서 1년 넘게 코로나 역학조사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코로나19와의 전쟁에 저 또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기여하고 싶었어요.
국가 안보의 개념은 기존의 군사적 위협에서 마약, 전염병 등 비군사적 위험까지도 포함하고 있거든요. 저는 스스로 군복 대신 방호복을, 방독면 대신 마스크를, 총 대신 전화를 통해 역학조사관의 임무를 다하는 전사라고 생각합니다.
멋지십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제일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요?
다시 학자의 삶으로 돌아가 제 분야 연구에 매진할 계획이에요. 집필, 강연 등을 통해서 여성 탈북민의 현실을 알리는 플랫폼이자, 목표했던 바처럼 인권 신장과 사회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작은 버팀목이 되고 싶습니다.
U+멤버십 구독콕 서비스를 활용해서 밀리의 서재로 틈틈이 전공 관련 서적을 읽고 있는데요. 코로나가 끝난다면 또 열심히 노력해서 제 책을 완성해, 언젠가 밀리의 서재에서도 제 책을 만나볼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고 있어요.
비슷한 나이, 또래의 도전을 앞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내로, 엄마로 내 인생을 끝내기에 ‘나’는 너무 소중한 사람이에요.
처음 박사 학위에 도전할 때, 반대와 우려도 많았죠. 하지만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고 목표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해냈어요.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자기계발을 계속 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되돌아봤을 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요.